오늘이 그 날이다. 내 몸의 삶이 끝나는 날. 난 그걸 미리 알 수 있었다.
종교는 인류의 오랜 본능이었다. 무신론자, 불가지론자를 자처하는 사람들 또한 다른 얼굴을 한 종교인에 지나지 않았다.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종교는 사라지지 않을 터였다. 적어도 그렇게 여겨졌었다. 그들이 나타나가 전까지는.
그들이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어느 날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 본 사람들의 눈에, 그들이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이 타고 온 그 무언가가.
그들의 그것은, 공상과학영화에서 보아 오던 것과 비슷한 형태로, 비슷하게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며 그곳에 있었다. 그게 벌써 3년 전 일이다.
그들은 인류에게 말을 할 수 있었다. 공기 중에 파동을 일으켜 고막을 자극하는 방식이 아니라 마음으로 바로 말을 걸어오곤 했다. 그들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본 사람들은 극히 드물었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정체에 대해 장황히 설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바로 인류의 역사에서 여러 이름으로 불려온 존재, 두려움과 경배의 대상이 되었던 그 존재였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누군가 어리석게 물어본다면, 난 그저 “그냥..” 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출현하고 나서, 인류의 삶은 그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사람들은 자신이 죽을 날을 알게 되었으며, 죽음이란 몸을 벗어나 정신이 다른 차원으로 가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제 사람들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로 생을, 자신을 그리고 타인을 대하게 되었다.
얼마 전부터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이 그 날이다.
서른아홉. 아직 한창이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해도 되는 나이지만, 그렇다고 뭐 그리 죽기 억울한 나이도 아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전보다 너그러이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장수하는 사람들을 덜 부러워했다.
아직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급히 정리해야 할 일들이 있어 마음이 바빴다. 시중의 우스개처럼 컴퓨터 하드를 정리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하찮은 일 말고도 처리해야 할 일은 많았다.
아침, 출근길에 본 햇살이 새삼스레 따뜻하게 느껴졌다. 거칠게 끼어드는 앞차 운전자도 너그럽게 봐 줄 수 있었다.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오던 회사 사람도, 조금은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시간이 별로 없다. 이 몸을 벗어나 다른 차원으로 내 정신이 옮겨갈 시간이 되어간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따뜻한 포옹과 인사를 나누러 간다. 그러고 보니 지난 주말 늙으신 부모님을 뵈러 마지막으로 다녀올 것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드려야겠다.
이제 갈 시간이다. 저기 빛이 보인다. 점점 의식이 흐려진다. 혼자가 아니다. 희미하지만 낯익은 얼굴들이 동행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