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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4.08.14 오늘이 그 날이다.
  3. 2014.03.25 작별 2

해로

꿈 & 이야기 2017. 3. 21. 20:46


요즘은 별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 초저녁 달 주위에 금성이라도 보이면 어찌나 반가운지.. 내 어린 시절엔 그렇지 않았었다. 겨울철 이른 저녁을 먹고 마당에 나와 보면, 하늘 가득 메운 별이 쏟아질 듯 가까워보였다.

 

태어나고 60갑자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용띠해가 된 지금, 나는 또 다시 마당 평상에 걸터앉아 하늘을 보고 있다. 몇 년 전 이른 은퇴를 하고, 아내가 다니는 시골 초등학교 근처에 마련한 집이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결혼해 낳은 두 아이는 각자 독립을 했고, 아내와 나는 오래 미루어왔던 마당이 있는 집의 로망을 실현했다. 물론 그 로망에 100퍼센트 부합하는 결과물은 아니었지만..

 

나는 아내가 출근하고 나면 대충 아침 먹은 것들을 치우고 집을 정리한 후, 주로 마당에 나와 시간을 보낸다. 작은 라디오를 틀어놓고 책을 읽거나, 커피를 내려 마시며 바람을 쐬면 시간이 참 잘 간다. 요즘 보기 드문 싸리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작은 마당 한 쪽엔 족보를 알 수 없는 누렁이가 주로 누워 시간을 보낸다. 동네 교회 어른이 키우다 돌아가시면서 돌볼 사람이 없게 된 녀석을 몇 달 전 거둬들였는데, 이젠 내가 그 녀석과 꽤 교감을 하며 도움을 받고 있다. 태생이 애완견이 아닌 녀석은, 무심한 듯 적당한 거리를 두며 우리와 공존하고 있다. 예전 내가 어렸을 땐 부모님이 남은 밥을 끓여 개밥을 줬었지만, 지금의 나는 그냥 사료를 사다 먹인다. 가끔 저게 무슨 맛일까 궁금할 때도 있다.

 

아내는 오늘 회식이라 늦는다고 했다. 전화를 한 번 해봤지만 여태까지 그래왔듯 한 번에 전화를 받는 일은 별로 없다. 별 일 없겠지 싶어 그냥 뒀다. 잠시 후 전화벨이 울려 아내인가 싶었는데 받아보니 아들 녀석이다. 어느새 삼십대 중반이 된 녀석이지만 아직도 아이 같은 느낌이다. 몇 마디 안부를 물은 녀석은 전화를 끊었고, 나는 전화기에 저장해 둔 녀석과 제 누나가 교복을 입고 있는 사진을 찾아보았다. 증명사진 찍는 아이들을 따라가 사진관 벽면을 배경으로 내가 찍어줬던 사진이다. 그 이후로 전화기를 여러 차례 바꿨지만 아이들이 어리고 아내와 내가 젊었던 시절의 사진들은 계속 옮겨 저장해두고 가끔 꺼내본다.

 

혼자 거하게 저녁 챙겨먹기도 귀찮고 해서 손에 들고 나온 맥주가 벌써 두 캔 째. 아내가 운전을 하지 않던 시절 같으면 아내를 데리러 가느라 참아야 했겠지만, 시골로 내려오면서 아내는 손수 운전을 해 다니기 시작했다. 시골길이라 자가용이 아니면 교통편이 좋지 않기에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지만, 그보다 내게서 독립하고자 하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먼저 세상을 뜬다면 아내 혼자 이 집에 살긴 힘들 것이다. 그땐 다시 딸아이가 사는 곳 근처에 집을 구해 올라가라고 얘기해 두었다. 속 깊은 딸아이는 말은 살갑게 하지 못하더라도 제법 알뜰히 제 어미를 챙길 것이다.

 

아직 평상에 누워 자기엔 쌀쌀한 날씨지만, 누워서 별을 보고 있자니 술기운이 올라 잠이 온다. 까무룩 잠이 들려는 찰나, 마을 초입에 아내의 SUV 엔진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헤드라이트 불빛도 보인다. 여태 나는 없는 사람 취급하던 누렁이도 차 소리를 듣고는 일어나 주인 맞을 준비를 한다. 역시 짐승들은 권력서열에 민감하다.

 

아내가 차에서 내린다. 이제는 주차도 제법 잘 한다. 나는 아내에게 다가가 가방을 받아든다. 20년 전에 내가 생일선물로 사준 가방인데, 이 낡은 것을 용케 버리지 않고 아직도 들고 다닌다. 다음 생일엔 좀 더 비싼 가방을 하나 사줘야겠다.

 

당신, 저녁은 먹었어?”

 

, 피곤하지? 얼른 들어가자..”

Posted by 안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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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그 날이다. 내 몸의 삶이 끝나는 날. 난 그걸 미리 알 수 있었다.

 

 

종교는 인류의 오랜 본능이었다. 무신론자, 불가지론자를 자처하는 사람들 또한 다른 얼굴을 한 종교인에 지나지 않았다.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종교는 사라지지 않을 터였다. 적어도 그렇게 여겨졌었다. 그들이 나타나가 전까지는.

 

그들이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어느 날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 본 사람들의 눈에, 그들이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이 타고 온 그 무언가가.

그들의 그것은, 공상과학영화에서 보아 오던 것과 비슷한 형태로, 비슷하게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며 그곳에 있었다. 그게 벌써 3년 전 일이다. 

 

그들은 인류에게 말을 할 수 있었다. 공기 중에 파동을 일으켜 고막을 자극하는 방식이 아니라 마음으로 바로 말을 걸어오곤 했다. 그들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본 사람들은 극히 드물었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정체에 대해 장황히 설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바로 인류의 역사에서 여러 이름으로 불려온 존재, 두려움과 경배의 대상이 되었던 그 존재였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누군가 어리석게 물어본다면, 난 그저 그냥..” 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출현하고 나서, 인류의 삶은 그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사람들은 자신이 죽을 날을 알게 되었으며, 죽음이란 몸을 벗어나 정신이 다른 차원으로 가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았. 이제 사람들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로 생을, 자신을 그리고 타인을 대하게 되었다.

 

 

얼마 전부터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이 그 날이다.

서른아홉. 아직 한창이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해도 되는 나이지만, 그렇다고 뭐 그리 죽기 억울한 나이도 아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전보다 너그러이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장수하는 사람들을 덜 부러워했다.

 

아직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급히 정리해야 할 일들이 있어 마음이 바빴다. 시중의 우스개처럼 컴퓨터 하드를 정리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하찮은 일 말고도 처리해야 할 일은 많았다.

 

아침, 출근길에 본 햇살이 새삼스레 따뜻하게 느껴졌다. 거칠게 끼어드는 앞차 운전자도 너그럽게 봐 줄 수 있었다.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오던 회사 사람도, 조금은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시간이 별로 없다. 이 몸을 벗어나 다른 차원으로 내 정신이 옮겨갈 시간이 되어간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따뜻한 포옹과 인사를 나누러 간다. 그러고 보니 지난 주말 늙으신 부모님을 뵈러 마지막으로 다녀올 것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드려야겠다.

 

 

이제 갈 시간이다. 저기 빛이 보인다. 점점 의식이 흐려진다. 혼자가 아니다. 희미하지만 낯익은 얼굴들이 동행해주고 있다.

Posted by 안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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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꿈 & 이야기 2014. 3. 25. 18:58

여러분, 순서대로 줄을 서 주세요.”

 

낯선 목소리에 그는 문득 정신을 차렸다.

 

여기가 어디지?’

 

처음 보는 건물이었다. 넓고 잘 정돈되어 있는 실내, 화려하지 않지만 품위있는 장식들. 한쪽으로 나 있는 출구는 어디론가 이어지는 긴 복도로 연결되어 있었다. 묘한 빛이 가득차 있는 복도였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연령대와 차림새가 모두 제각각이었다. 멋지게 나이든 노신사, 환자복을 입고 있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소녀, 삶에 지쳐있는 듯 보이는 중년 여성..

 

조금 전 말을 했던 낯선 목소리의 주인공과 그 옆의 선한 인상을 한 몇몇 사람들이 소란스런 장내를 정돈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그들은 명단에 있는 이름과 나이를 확인하며 사람들을 순서대로 어디론가 인도했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해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생각해보려 했으나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침에 아내를 직장에 내려주고 출근했던 일, 늘 하던 대로 낮에 사무실에서 일하던 것 까지는 기억이 났는데 그 이후로 기억이 없었다.

 

저기요..”

 

그는 안내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말을 걸려고 했으나 그 사람은 손에 들고 있는 명단을 보며 사람들을 확인하고 순서대로 줄을 세우느라 무척 바빠 보였다. 그는 잠시 그들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며 이곳이 어디일까 짐작해보려 애썼다. 낯설지만 이상하게도 편안한 마음이 드는 공간이었다. 그때 조금 떨어져있던 다른 안내인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 올해 서른아홉 맞으시죠?”

 

그의 대답은 기다리지도 않고 안내인은 그를 복도로 연결된 문으로 안내하려 했다. 그러나 묘한 저항감이 그의 발걸음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어디로 가는 거죠?”

 

안내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그의 바지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의 벨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울먹이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 어디야? 왜 아직 안와? 나 기분이 왠지 이상해.. 얼른 와.”

 

순간 그의 기억이 살아났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 눈부시게 아름답던 석양, 갑자기 중앙선을 넘어 그의 앞으로 돌진하던 트럭. 잠깐의 충격과 그 이후의 고요..

 

그제서야 그 공간의 묘한 비현실적인 느낌이 무엇 때문인지 알 것 같았다. 아마도 그곳은 이계(異界)로 가는 터미널 같은 곳이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에겐 시간이 별로 없었다. 어떻게 연결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마지막 통화일 이 전화도 저 복도로 들어서면 끊어질 터.

 

아직 못다한 얘기가 많았다. 아직 해야 할 일들도 있었다. 몸이 약해 늘 피곤해하는 아내, 늘 덜렁대며 물건을 놓고 다니는 아내의 곁에 오래오래 머물며 챙겨주어야 했다. 멋지게 커가고 있는 딸아이의 결혼식에서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싶었으며, 한창 총에 관심이 많은 아들 녀석이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하루 날잡고 종일 대부 삼부작을 함께 보기로 한 약속도 아직 지키지 못했다. 딸이 제 모습을 그대로 빼닮은 아이를 낳고 키우며 힘들어할 때 걱정할 것 없단다. 나도, 네 엄마도, 너도 그렇게 컸단다.’ 하고 위로하고 싶었고, 나보다 키가 훌쩍 더 커질 아들이 나를 팔씨름으로 이길 날을 기쁘게 기다리고도 싶었다.

아직 못다한 일이 많은데, 참 부족한 남편이고 아비였는데 이젠 시간이 없다. 이럴 줄 알았다면 가족을 위해라며 일하기보단 그들과 함께 시간을 더 보냈을 것을.. 후회는 언제 해도 늦다.

 

안녕 여보.. 저 복도 너머에서 당신 기다리고 있을게. 그렇다고 너무 빨리 따라오진 말아, 아이들 커가는 모습 보고, 손주들이랑 많이 놀아주고 내 몫까지 충분히 살고 늦게 늦게 와.. 난 당신 기다리는 거 하나도 안지루할거야.’

Posted by 안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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